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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문명국의 가난한 오늘

아르메니아 예레반

아름다운 산하 이면에 깊은 상처 자국을 간직한 나라, 아르메니아(Republic of Armenia). 코카서스의 이 작은 나라가 견디기에 너무 가혹했던 역사는 오히려 아르메니아인들을 그 어느 대륙의 민족보다 강한 정체성으로 무장시켰다. 오래된 고유의 문자와 문명을 가진 민족이라는 자존심 하나로 소아시아와 코카서스가 만나는 문명의 교차점에서, 세계사를 빛낸 온갖 강대국들의 탐욕을 견뎌온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와 비슷한 까닭일까? 공화국 광장을 걸으며 마주치는 얼굴 하나하나에 익숙한 설움과 비장한 자존감이 읽혀진다.

글과 사진서상우(칼럼니스트)

ddot2_imgleft.png 인구 3백만 명의 작은 국가지만 장대한 역사와 고유의 문자를 지닌 매우 강인한 정신의 아르메니아.
그들이 지나온 고통의 역사마저 자신들의 저력으로 만든 우리와 너무나 닮은 나라. ddot2_imgright.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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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케이드에서 바라본 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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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로프 마슈토츠 동상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 약소국의 비극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보다 작은 크기에 겨우 3백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는 크기와는 달리 장대한 역사를 지닌 국가이다. 로마가 기독교를 인정(313년)하기 이전에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로마제국은 391년) 세계 최초의 국가이자 오래된 그들 고유의 문자를 가지고 있다. ‘메스로프 마슈토츠(Mesrop Mashtots)’라는 아르메니아 성인이 창제한 아르메니아 문자는 서기 405년에 창제된 이후 1,600년 넘게 민족의 문학과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만의 문화와 언어, 종교를 오랜 세월 지켜오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페르시아, 비잔틴, 몽골, 투르크(셀주크, 오스만)와 러시아까지 아르메니아는 서아시아와 동유럽을 제패한 당대 최강대국들에게 번갈아 지배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수 백년 간 터키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과 공생하며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이는 오스만투르크의 관용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스만이 쇠퇴하고 러시아가 성장하여 남하하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이 두 민족의 평화로운 공존도 종말을 맞았다. 현재의 아르메니아공화국인 동 아르메니아가 러시아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독립을 위한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관용적이던 제국은 보수적으로, 다양성이 인정되던 사회는 보다 종교적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패배하고 퇴보하던 오스만의 터키인들은 패배와 혼란의 원인을 동부 터키와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을 내부의 적으로 몰며 비극은 시작되었다.
1894~1896년까지 오스만제국의 몰락과 함께 자행된 1차 학살과 1915년 4월 24일 오스만 터키정부가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 지식인, 종교인, 오피니언 리더 수 백명을 체포하면서 수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그해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백만 명 이상을 학살한 터키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가난한 현실을 잊게 하는 현대적인 도시, 예레반(Yerevan)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은 가난한 나라라는 현실과는 괴리감이 느껴질 만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시내에는 카페가 즐비하다. 기원전 782년 세워진 예레브니(Erebuni)의 현신인 이 도시는 도무지 2,800년 된 도시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1920년대 중반 구 소련의 첫 번째 계획도시로 재설계되어 지금의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도시의 현대화는 편리함을 안겨주지만 안타깝게도 민족문화의 명맥을 이어왔던 수많은 아르메니아 교회들과 모스크들, 바자르와 목욕탕, 페르시아 성벽과 카라반사라이를 내몰았다.
예레반의 모든 활동의 중심은 1924년 아르메니아의 건축가 알렉산더 타마니안(Alexander Tamanian)이 설계하고 건축한 예레반공화국 광장이다. 광장 전체가 타원형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돌로 만든 타원형 모양의 무늬가 있다. 이것은 하늘 위에서 아르메니아 전통 러그(Rug)가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광장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것은 매일 밤 8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는 분수쇼다. 규모는 작지만 음악과 여러 가지 조명이 더해진 아름다움이 그들의 가난한 현실을 덮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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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인들의 민족의 영산, 아라라트

노아의 방주가 멈춘 곳, 아라라트산(Mt. Ararat)

예레반 중심부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산이 하나 있다. 아르메니아인들의 정신적인 랜드마크인 아라라트(Ararat). 해발 5,137m의 이 영산은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도착한 곳이라고 한다. 이제 이 산은 아르메니아 영토가 아닌 터키의 것이지만, 여전히 지역 주민들은 이 산을 민족의 산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라라트산의 넘어갈 수 없는 계곡에는 잘못 세운 텐트처럼 터키와의 국경이 고통스럽게 서있다. 이곳에서 ‘아라라트’라는 이름은 여러 방식으로 존재한다. 레스토랑, 기업 그리고 증류한 술 이름에 이르기까지 마치 생활 곳곳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을 다른 형태로 위로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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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고문서를 소장한 마테나다란 박물관

세계 기록유산 보고, 마테나다란(Matenadaran) 박물관

예레반 중심부에 있는 마테나다란(Matenadaran)은 복음서와 성무일도서, 시편 등의 필사본 17,000여 종이 소장된 도서관으로 마치 나비 날개를 수집해 전시하듯 모든 책이 유리 케이스에 펼쳐져 있다. ‘마테’는 책을, ‘나라’는 ‘도서관’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이곳을 도서관이라기보다는 고문서 보관서라고 부른다.
박물관 입구에는 아르메니아의 세종대왕인 마슈토츠의 동상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405년경 36글자의 아르메니아 문자를 만든 그의 덕에 아르메니아 문자는 몇 번의 변화를 겪었지만, 소련시대에도 문자 해독률이 90%에 달했을 만큼 문명국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박물관이 소장한 고서가 주는 웅장한 분위기는 벽면에 그가 창제한 문자로 처음 적었다는 솔로몬의 잠언이 대신 읊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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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개의 계단으로 시작되는 캐스케이드

문명국의 자부심을 현재에 보다,
캐스케이드(The Great Cascade)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60주년 기념비가 서 있는 언덕을 향해 총 572개의 계단이 있고 계단을 따라 많은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이 바로 ‘캐스케이드’이다. 이 계단들은 예레반의 위쪽을 도시의 문화 중심지로 연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캐스케이드 맨 꼭대기에 오르면 70피트 높이의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큰 조각인 ‘아르메니아 어머니상’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주춧돌 위로 우뚝 솟은 소비에트 조각상의 시선은 예레반의 안개를 가로질러 어렴풋이 보이는 잃어버린 산, 아라라트를 향하고 있다.
외부는 건물 양쪽으로 계단이 있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조각품으로 야외조각공원을 조성했고 야외정원과 분수, 예술작품을 한데 모아 놓아 과거에 이들이 누렸던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자부심이 이 계단들을 따라 사람을 압도한다.
옛날 사람들은 예레반을 ‘장미도시’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건물이 아르메니아에서 나는 장미빛 응회암으로 축조된 탓이다. 어쩌면 그들은 침략과 학살이 되풀이되었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화려했던 문명국의 자부심을 장미빛 환상처럼 되살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예레반 시민들이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는 공화국 광장의 상상 이상으로 훌륭한 분수쇼를 보며 다수의 가난을 외면하고 겉모습만 꾸민 채 유럽의 일원이고 싶어하는 모습 또한 다다를 수 없는 장미도시 같아 편치 않았다. 그러나 그들 특유의 뿌리 깊은 전통문화를 통해 정치적 변화를 극복했듯이 지금의 퍽퍽한 삶 또한 개척해 나갈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 TIP

날씨아르메니아의 기후는 고도에 따라 아열대 기후에서 고지대, 대륙성 기후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2010년 기준으로 1월 평균기온은 -2.3°C를 보였고, 6월 평균기온은 16.3°C를 보였다. 연간 강우량은 수도인 예레반(Yerevan)의 경우 330mm 정도이며, 산악지대는 700mm~900mm이다.

여행적기3월~6월과 10월~12월 초까지가 활동하기 좋다. 여름에는 35℃에서 40도를 넘으니 여행을 피하는 게 좋다.

여행비자2018년 3월 19일부터 한국 국적 여권 소지자는 무비자 방문이 가능하며 최대 180일 체류할 수 있다.

여행경비1드람 = 2.4원이며 5성급 호텔 가격이 12달러 전후다.

여행필수품4월 말은 이미 여름을 향해 치닫는 시간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햇빛은 강하고 기온은 부쩍 올라간다. 선크림과 선글라스는 잊지 말고 챙겨야 한다.

아르메니아는 2020년 9월 AECSD의장으로 연차총회 및 컨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2021년으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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