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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경제 부흥을 일으킨
민족자본에서

문화발전의 모티브가 된
조양방직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으로 설립돼 1950년대까지 강화의 경제부흥을 이끌던 조양방직은 이름 그대로 방직공장이었다. 조양방직에서 생산한 직물들은 다리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던 시절 외딴 섬 강화에서 중국으로 수출될 정도로 유명했다. 그러나 어김없이 시작된 산업화로 중화학공업이 산업구조의 기반이 되자 방직산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시절을 비껴갈 수 없었던 조양방직도 결국 공장문을 닫고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편집부사진인천관광공사

세월의 더께를
고스란히 품은 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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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문을 닫은 조양방직은 그 이후에도 이름과 주인은 달라졌지만, 단무지공장, 젓갈공장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로는 그마저도 잃어버려 등나무가 빼곡한 폐허가 되었다. 그대로 수 십년 방치되었던 이곳을 이용철 대표가 인수하여 1년간 보수공사를 거친 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오픈했다.

2,000평이나 되는 규모는 들어서자 마자 사람을 압도한다. 곳곳에 놓인 조형물들이 풍기는 시간의 더께를 풍기는 분위기는 공간의 역사와 좋은 합을 이룬다. 벽 1과 벽 2로 이름 붙여진 카페의 오른쪽 벽면은 세월만이 만들 수 있는 벽면 그 자체로 이 대표가 특히 사랑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이 벽면에 빈티지 대형 영사기를 통해 상영되고 있는 흑백영화들은 우리의 시간을 융성했던 강화의 옛날로 되돌려 놓는다.

이용철 대표가 처음 이곳을 왔을 때는 너무 많은 쓰레기와 등나무가 뒤덮여 무섭기까지 했단다. 그러나 눈에 들어온 아름다운 트러스 구조에 마음을 빼앗긴 그는 날마다 찾아와 카페 조양방직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부식에 약한 소나무가 아닌 물에 강한 삼나무를 사용해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장점만 모아 건물의 강도를 보강했다.

중심에는 패션쇼의 런웨이를 떠올리게 하는 아주 크고 넓은 길을 내어 다양한 기능의 공간으로 변신이 가능하다. 과거 직물공장에서 직물을 만들었던 것처럼 지금은 카페와 미술관이라는 공간으로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조양방직. 그 덕에 배타적이었던 주민들도 지금은 이곳의 단골임을 자랑한다. 침체되었던 공장터를 개성 넘치는 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많은 사람들이 다시 강화도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곳뿐 아니라 신문리나 강화읍 곳곳에 남아 있는 예전의 건축물들은 강화의 제2의 부흥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소중한 자원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조양방직이 그 모티브로써 도시재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sub2_icon1.png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향나무길 5번길 12sub2_icon2.png032-933-2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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