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소금은 음식 이상의 음식이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무기로도 사용된 바 있는데, 적진을 점령한 군대가 적들이 농작물을 수확하지 못하도록 경작지에 소금을 뿌린 것이 그 시초이다. 한때 수 많은 문화권에서 신성시되기도 했는데, 어느 시대에서는 세례 받는 아이의 입술에 소금을 얹어 더러움을 씻는 상징적인 존재로 그 값어치가 어마어마했다.
절대왕정이 통치하던 시절 유럽에서는 전쟁을 하려면 소금부터 준비했다. 식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대구와 청어를 상하지 않게 보관하려면 소금에 절이는 게 필수였으며, 병사들이 다쳤을 때도 소금물로 치료했고, 그들의 월급 또한 소금으로 지불했다. 오늘날 급여를 의미하는 샐러리(Salary)는 이 시대의 ‘소금 지불’이라는 뜻의 라틴어 ‘살라리움(Salarium)’에서 온 것이다.
프랑스혁명의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사치스러운 왕실의 생활을 위해 소금세를 지나치게 많이 걷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소금은 누구나 먹어야 하는 것이기에 소금세를 높이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그만큼 흔들리게 된다. 18세기 프랑스의 염세(Gabelle)처럼 소금에 세금을 부여하는 문제는 거대한 사회의 변화나 혁명을 불러일으킨 원인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간디의 소금 행진’이다. 영국 정부가 인도의 소금세를 2배로 올리자 1930년 4월 5일 간디는 78명의 추종자와 함께 이에 대항하기 위해 행진을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썰물이 빠져나가는 시간에 맞춰 바다로 달려간 그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소금을 집어 들며 공개적으로 영국 총독의 절대 권력에 저항함을 선언했다. 소금 행진이 영국의 식민통치를 종식시킨 건 아니었지만, 전 세계 여론의 눈이 비폭력 불복종 운동에 쏠리는 계기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