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58 SPRING 2021

#가문의 영속성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꽃 피운
르네상스의 정신
메디치 가문

 

역사 속의 어떤 왕가도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에 이바지한 공적에 필적할 만한 공을 세우지 못했다.
왜일까? 우리는 그 답을 다시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단지 재력과 권모술수만으로는 명가의 자리에 오르기 불가능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고귀한 자들만의 책무를
몸소 실천한 가문만이 시대가 바뀌어도 그 지도력의 본질을 인정받을 수 있다.
오인숙(칼럼니스트)

문화예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다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을 제외하고 논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평민 출신이었던 이 가문은 은행업과 상업으로 막강한 부를 축적하여 도시국가 피렌체를 350여 년 동안 통치하였다. 이 350년 동안 피렌체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등 천재적인 예술가와 학자들이 그곳에서 재능을 펼치며 ‘르네상스’라는 인본주의 문화운동의 꽃을 피웠다.
그 시대 금융업은 고리대금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이 가문이 유럽의 어느 귀족 못지않은 명문가가 된 배경은 사업으로 쌓은 부를 아낌없이 그들이 사는 도시에 베푼 데 있다.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은 피렌체 시민들, 그중에서도 학자와 예술가들의 메디치가에 대한 존경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메디치 가문의 대를 이은 지원은
피렌체를 고대 그리스의
문화적 꽃에 필적하는
르네상스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예술과 재산을
모든 이들이 함께 공유하는
보편적 재산으로 남겼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상인에서 권력의 중심으로

‘메디치(Medici)’라는 이름이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30년이다. 메디치는 이탈리아어로 '의사'를 뜻하는 '메디코(medico)'의 복수형이므로, 이들의 조상이 의사나 약제사, 염료상인 등의 직업을 가진 데서 가문의 명칭이 비롯되었다고 본다. 특히 우리가 이 가문에서는 주목해야 할 인물은 '코시모(Cosimo)'라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메디치 가문의 여러 세대에서 사용되었는데, 이 역시 의사와 약제사의 수호성인인 '성 코스마스(Saints Cosmas)'와 연관된 것으로 해석된다.
메디치 가문은 13세기 이후 피렌체에서 점차 영향력을 키워갔는데, 1378년에는 살베스트로(Salvestro de' Medici)가 알비치(Albizzi) 가문이 주도하던 과두정부에 맞서서 하층 노동자들과 신흥 상인들이 연합해 일으킨 ‘촘피의 난(Tumulto dei Ciompi)’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 시기에 비에리(Vieri di Cambio de' Medici)가 은행업에 진출하여 로마교황청과 연대를 맺으며 부를 쌓았다. 그리고 조반니(Giovanni di Bicci de' Medici) 시대에 이르러 피렌체를 지배하는 가문으로 세력이 커졌다. 메디치 가문에서 조반니의 시대는 매우 중요하다. 메디치은행(Banco dei Medici)을 설립했으며, 로마와 아비뇽에 두 명의 교황이 존재하는 대분열 시기 대립교황 요하네스 23세(Ioannes XXIII)를 지원함으로써 로마교황청의 재무관리자가 되었고, 이후 피렌체의 행정장관을 지냈다.
조반니가 가문의 기틀을 확립했다면, 그의 아들 코시모(Cosimo di Giovanni de' Medici)는 피렌체에서 가문의 지배권을 확립한 인물이다. 그는 1433년 피렌체에서 추방되기도 했으나, 이듬해 알비치 가문을 쫓아내고 피렌체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도시를 넘어 런던과 아비뇽 등 유럽의 다른 지역들까지 메디치은행의 지점을 확대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예술의 위대함을 꽃 피우다

가문의 황금기는 코시모의 손자인 로렌초(Lorenzo de' Medici) 대에 맞이한다. 그는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이탈리아 여러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릴레오, 다 빈치, 단테, 도나텔로, 라파엘로,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그리고 건축가인 브루넬레스코 등 역사를 뒤흔드는 이름의 예술가와 학자, 사상가들을 열정적으로 지원하여 철학, 문학, 역사, 예술이 부흥하는 데 불을 지피며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데 앞장섰다.
이러한 메디치가의 흔적이 단지 한 가문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로 남게 되는 결정적인 대목이 있다.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가 후손 없이 숨을 거두며 가문의 전 재산을 피렌체 시민의 것으로 돌린 것이다. 특히 피렌체공화국의 행정부 역할을 한 우피치(Uffizi)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르네상스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월은 흘러도 명문가의 자부심과 품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메디치 가문의 대를 이은 지원은 피렌체를 고대 그리스의 문화적 꽃에 필적하는 르네상스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예술과 재산, 그 성과물들을 사적인 개인자산으로 물려준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함께 공유하는 보편적 재산으로 남겼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메디치 가문을 다시 살펴보는 큰 이유, 그것은 정치가나 자본가, 지식인들이 어떤 가치와 이상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발행인이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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