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58 SPRING 2021

#ECO Travel

인간의 최소한의 개입으로
만든 인본주의 생태도시
쿠리치바

 

‘쿠리치바’는 포르투갈이 이 지역을 지배하기 이전에 거주하던 투피(Tupi)족의 언어로
‘소나무가 많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도 쿠리치바에는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단지 소나무숲만으로 쿠리치바가 세계적인 생태도시로 이름이 난 것은 아니다.
그 옛날 이곳은 무질서한 개발이 부른 환경오염으로 사람들의 삶이 흔들리고 도시 곳곳의 기능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소나무숲의 푸르름에 가려졌던 도시의 어두운 민낯이 드러난 건
이 도시의 문제를 해결책으로 마주한 한 시장의 용기 덕분이었다.
글·사진 서상우(칼럼니스트)

도시를 인간으로 바라보다

쿠리치바는 브라질 남부에 위치한 파라나주의 주도로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에서 온 이주민들이 모여 세운 도시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여느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급속한 인구 증가와 무질서한 개발로 환경오염이 심한 도시로 전락하였다. 그러던 이 도시를 오늘날의 생태도시로 바꾼 것은 1971년부터 1992년까지 시장을 지낸 자이미 레르네르(Jaime Lerner)의 정책이었다.
자이미 레르네르(Jaime Lerner)는 쿠리치바 시장을 세 번, 파라나주지사를 두 번 역임하면서 쿠리치바를 ‘세계가 주목하는 꿈의 생태도시’로 변화시킨 정치인이자 행정가이며 도시설계가다. 그는 평소 “도시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해결책이다”라고 말하며, 어두운 골목을 밝히는 가로등, 특별한 기억을 담은 공원 벤치 같은 작은 요소를 통해 쿠리치바를 모두가 살 만한 곳으로 변모시켰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가 도시를 설계하는 관점이다.
자이미 레르네르는 도시 스스로가 재생할 수 있도록 인간의 ‘최소한의 개입’만을 허락했다. 그는 이를 ‘침술행위’라 정의하며 세계 각국의 도시를 여행하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쌓은 자신만의 현실적인 도시재생 노하우를 바탕으로 쿠리치바를 변화시켰다. 도시를 바라보는 그의 철학은 매우 인간적이다. 도시는 생명체와 같고 무엇보다 인간과 같다는 깨달음으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인간에게 중요한 것처럼, 그곳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는 것이 도지재생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사람 중심의 보행자 전용도로

모던한 건축물과 녹지공간이 조화로운
쿠리치바 시내

도시의 기능을 제한하여
도시를 살리다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은 누군가 강요한다고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는 사람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레르네르 시장은 먼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쿠리치바의 중심가를 선택했다. 단 며칠 만에 자동차 전용도로를 보행자 도로로 바꾸고 입체적인 대중교통 노선을 개발해 교통난을 해소하였다. 급행버스, 지역버스, 직통버스 등을 색깔별로 구분하고 버스 간 완벽한 환승시스템을 마련해 대중교통만으로 어디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하였다. 우리에게 이 교통체계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서울의 시내버스 체계도 쿠리치바의 교통체계를 빌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심지가 아닌 곳에서 건물을 지을 때는 간선도로로부터 5m의 공간을 확보하여 나무를 심게 하였는데, 이렇게 심은 나무가 약 100만 그루에 달하며, 시민 1인당 공원면적도 약 100배나 증가하였다. 반면 주거지역은 전체 면적의 50%만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하였고, 나머지는 자연 상태로 남겨 두어 토양이 빗물을 흡수할 수 있는 면적을 넓혀 홍수를 예방하였다.

원통형의 굴절 버스 정류장

쿠리치바 도심에는 약 1km에 달하는 보행자 전용도로가 있다. 1970년대 초반, 상업지역 도로에 꽃과 나무를 심고 자동차 진입을 차단하면서 조성된 이 도로는 현재는 많은 시민에게 사랑받는 거리이지만 처음에는 주변 상인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상인들의 기우와는 달리 현재는 시민 소통공간이자 주말에는 각종 공연과 행사가 열리는 관광명소로 이름이 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쿠리치바의 보행자 전용도로를 벤치마킹하여 서울시 등 국내 각 도시의 번화가에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하기도 했다. 보행자 전용도로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 또한 잘 갖춰져 있다. 맹인을 위한 보도블록도 있고 휠체어가 이동하기 쉽게 시설들이 정비되어 있다.
쿠리치바의 도시계획은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의 기능을 제한한 데서 시작되었다. 주거지역의 면적을 제한하고 하루아침에 자동차 전용도로를 없애 사람 중심의 거리를 조성하였다. 당연히 이러한 불편함을 너그러이 이해할 도시민은 없다. 그럼에도 쿠리치바 시민들이 이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던 건 다름아닌 아이들 때문이었다. 차도가 보행자 도로로 바뀌던 주말, 그 도로 위에서 어린이 사생대회를 열어 쿠리치바의 다음 세대를 위해 어른들의 욕심을 내려놓게 한 것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쿠리치바의 보행자 도로 위 사생대회는 계속되고 있다.

쿠리치바는 친환경적인 도시인
동시에 모던한 도시이다.
건물의 모양이 모두 다른 높은 건물들이
마천루를 이루고 있다.
같은 모양의 건물은 건축허가가
나지 않은 이 도시만의 정책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쿠리치바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나의 거대 건축 전시장에
온 듯한 착각이 인다.

디자인과 책을 사랑하는
인본주의 도시

옛날에 전차로 사용되었던 전차도서관

숲을 보호하고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김산하 박사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깨어 있는 의식’이다. 시민이 움직여야 기업이 반응하고 그 뒤에야 정부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발점은 시민이다. 쓰레기를 줄이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어 있는 의식으로 환경과 자연에 대한 한목소리를 내 분위기와 여론을 바꿔야 한다.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자발적으로 관찰하고 활동하는 시민운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시민의식 함양과 함께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척 다양하다. 배달 주문보다는 직접 마트에 가서 물건 구매하기, 장 볼 때 장바구니나 집에 있는 비닐봉지 챙겨가기, 일회용품 대신 텀블러 등 다회용품 사용하기, 식당에서 먹지 않는 반찬은 처음부터 받지 않기 등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다.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육류의 소비를 줄이고 대량 생산·소비·폐기에 준하는 모든 행위를 줄여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를 혼자만의 활동으로 끝내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확산시켜 함께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않으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심 생태도시의 한가운데로

이제 발걸음을 외곽으로 돌려 보자. 생태도시란 이름에 맞게 주변에 공원들이 산재해 있다. 대부분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원들이긴 하지만 한 가지 뚜렷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호수, 강, 폭포, 숲 등 ‘자연’을 테마로 한다는 점이다.
이중 ‘탕구아공원(Parque Tangua)’은 원래 채석장이던 곳을 공원으로 탈바꿈한 곳으로 인공폭포가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쿠리치바 문화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오페라 데아라메(Opera de Arame)’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아라메는 ‘철사 혹은 철봉’을 의미하는데 오페라극장 전체가 철제와 유리로 만들어져 붙여진 이름이다. 이 역시 폐광이었던 채석장을 철 파이트 구조에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지붕을 덮어 2,400석의 객석을 갖춘 예술문화 공연장으로 바꿔, 그야말로 도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 도시의 상징물이다.

철제와 유리로 만들어진 오페라 데 아라

탕구아공원의 거대한 인공폭포

쿠리치바 곳곳을 관광할 수 있는 관광버스

이 외에도 찌라덴찌스 공원(Parque Tiradentes)에 가면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관광을 시켜주는 아주 특별한 버스를 탈 수 있다. 열 군데 이상의 관광명소를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이 버스는 오전 9시부터 쿠리치바 대성당(Zero Ground)을 시작으로 총 26개의 정류장을 지난다.
우리가 쿠리치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생태도시라는 이유 하나만이 아니다. 도시재생을 통해 도시 환경, 빈곤, 교육, 문화재 등 도시 전반에 걸쳐 잘 설계된 도시계획이 도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이 유행어처럼 범람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 삶에 있어서 지속가능성의 해법은 무엇일까? 그 질문에 쿠리치바의 거리 곳곳이 매우 현실적인 답안을 제시해준다.

발행인이명호

발행처한국예탁결제원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금융로 40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기획·디자인·제작승일미디어그룹

Copyright © KSDian. ALL RIGHTS RESERVED.